구미 삼일문고에 다녀왔다. 임수현 시인이 진행하는 동시 팟캐스트에 잠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구미에 사는 임수현 시인은 2016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과 2019년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시인이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왜 하필이면 `삼일`이라는 상호를 붙였을까 생각했다. 뭔가 촌스럽네, 지역에서 학습 참고서를 주로 파는 그렇고 그런 서점이겠지. 내 선입견은 서점 문을 열자마자 여지없이 무너졌다.
삼일문고는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놀라운 책의 꽃밭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그저 팔리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주 알맞은 자리에 식물들이 식재된 식물원처럼 책들이 화분처럼 자리를 잡고 살아 있었다. 잘 꾸린 카페와 같은 조명, 용도에 맞게 설계된 책장과 매대들…. 근사한 카페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지역의 서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학습용 도서 판매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조차도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한 일이 언제였던가 싶다.
책의 배치와 진열은 삼일문고만의 남다른 특징이라 할 만하다. 베스트셀러 코너 따위를 형식적으로 마련해 놓지는 않는다. 주제별로 책을 분류한 다음 서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을 간략하게 안내하는 메모들을 책장에 붙여 놓았다. `삼일문고가 선정한 소설 31선` `시민이 뽑은 인생소설 31선` `청소년 고민 추천도서 100선` 등이 그것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를 그대로 엿볼 수 있으니 저절로 책을 집어 들게 된다. `고객들이 직접 꾸미는 1일 책방`은 책장 한 칸을 나만의 책방으로 꾸미는 기획이다. `종이약국`이라는 기획도 신선하다. 고객들이 고민을 적어 놓으면 책을 추천해 따로 마련한 코너에 책을 진열한다. 서점 곳곳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는 필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삼일문고의 2층은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 학습서로 채워져 있는데, 주말이면 마치 놀이터 같은 이곳에 아이들이 복작거린다고 한다.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과 서점을 잇는 노력은 주로 지하 1층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작가와의 대화, 북토크, 독서모임들이 1년에 100차례 가까이 진행된다니 또 한 번 놀란다. 내가 참여한 동시 팟캐스트에는 스무 명 정도의 독자들이 모였는데, 대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구미로 온 엄마들도 있었다. 대구라는 큰 도시가 하지 못하는 일을 삼일문고가 조금씩, 척척 해내고 있었다.
구미는 1970년대 이후 산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는 아버지의 통신사업, 장학재단 운영을 물려받아 고심 끝에 서점 문을 열었다. 구미의 아이들이 서점에서 느끼고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모르고 성장하는 게 미안해서 서점을 열었다는 것. 그의 남다른 열정은 국가산업공단이 자리한 구미를 책이 숨 쉬는 따스한 도시로 변모시킬 것이다. 나중에 삼일문고에 가거든 1층의 커다란 출입문을 직접 열어 보기 바란다. 통유리로 된 문을 옆으로 밀 것인가, 앞으로 밀 것인가 잠시 고민해 봐도 즐거울 것이다. 또 하나 서점 안팎에 세심하게 식재된 식물들을 보는 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1층 출입문 쪽에 중정처럼 꾸민 작은 정원은 서점의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밖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서 자라는 고사리들과 작은 돌덩이도 삼일문고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뜨거운 여름,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시원한 계곡을 찾지 말고 삼일문고에 가보라. 안도현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