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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재단

평생 번 돈7억 장학사기업 기금으로 조회 : 45,961      1992-03-01

렵게 공부하고 있는 주변의 불우학생들을 돕고, 지역민의 정신문화향상을 위해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출연, 장학재단을 설립한 사람이 있어 날로 각박해지는 이 시대에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


원평동에서 삼성전자 구미총대리점을 경영하고 있는 김한섭씨(52)가 그 주인공이다.


금릉군 조마면의 조그만 농촌마을에서 대농가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김씨는 출생 3일만에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자랐다.
김씨는 "배 곯는 아이에게 돌아가며 젖동냥을 해 준 마을 부인들의 인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것" 이라며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자신도 남에게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제 나이 50을 넘기면서 그동안 사회로 환원시키는 것이 작게는 이 지역을 위하고 크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백마디의 말보다 그동안 해온 다짐을 몸소 실천에 옮긴 김씨는 `지금 이 사회는 가진 자의 행동이 더욱 필요한 때` 라고 말했다. 

김씨는 생후 3일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형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5.16 직후 형의 사업이 실패하자 기술을 배워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기술하사관 학교에 입학해 재학중 성적우수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 유학, 그곳에서 전자기술을 익혔다.
귀국후 구미시 옛 국민은행 자리에 조그만 소리사를 열어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고생도 많이했지만 그의 뛰어난 기술을 알게된 삼성전자 측에서 지원을 해줘 이제는 구미역 앞에 1백 20평의 3층 건물을 지어 대리점을 운영하는 탄탄한 사업가가 되었다.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식들에게 집을 마련해 줄려고 돈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아버지께서 저희를 도우는 일은 집을 장만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이라며 그 돈으로 사회사업하기를 권유했습니다. `부가 결코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자식의 말에 저 또한 느낀 바가 있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 주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제가 이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자식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결심하였을때 식구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저는 지금도 집사람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집사람은 적극 후원해 줬습니다. 자식들이나 일가 친지 모두 대찬성이었지요. 반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장학재단 출연기금은 얼마입니까?
"현금 1억 1천만원과 부동산 1백50평(싯가6억원), 기타 비품비 2천여만원 등 7억 3천여만원 입니다. 기금의 이자와 부동산 임대료 등으로 재단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재단운영은 어떻게 하며 장학금 수여기준은 무엇입니까?


"현재 재단에는 이사 6명과 감사 고문 각 2명, 간사 1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혜자를 뽑는 심사위원이 4명입니다. 이들은 각계 각층의 명망있는 분들로 모두 무보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학금 수여기준은 도 교육위원회 규정에 따라 성적이 상위10% 내에 들면서 가정형편이 어렵고 장래성이 있는 학생 위주로 선발하고 있으며 1차 선발은 각 학교 교장선생님에게 위임하였습니다."

-장학금과 문화상의 수혜자는 몇명입니까?
 

"문화상은 지난해 11월 29일 충효, 애향, 모범근로, 효행, 근면, 격려 등 6개 부문의 11명에게 1천1백만원을 지급하였습니다. 또 도서공급은 관내 각 기관도서실 28곳에 32권씩 지원했습니다. 장학금 수여는 18개 국민학교 35명에게 각각 20만원과 부상을 수여하였고, 중학생은 8개교 9명에게 각 50만원씩, 고등학생은 6개교 7명에게 각 1백40만원, 대학생 1명에게 1백40만원을 각각 지급했습니다."

-재단설립에 따른 애로사항은 없었습니까?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고 수상자들에게 모범적 행동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저 자신의 몸가짐에 늘 조심합니다. 그리고 지난 얘기지만 재단 설립초기에 일부에서 지방의회선거 등을 의식한 선심공세라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지방의회선거가 끝난 뒤에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장학재단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하고 있습니까?


"우선 재단기금을 증액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금년에 5천만원을 증액시켰는데 좀 더 많은 기금을 확보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택을 주려고 여러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저는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 자식대에 이르러 더 많은 노력과 투자로 저희 `삼일문화장학재단`이 국내에서 제일 건실한 재단, 영원히 살아있는 재단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수상자들한테서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을때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는 아침 9시에 자신이 운영하는 대리점에 들러 종업원들에게 하루 일과를 지시하고 10시면 어김없이 재단사무실로 출근한다. "이곳에 오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고 말하는 김씨는 궂은 일에 두 손을 걷어 붙이고 앞장서 마치 약방의 감초와 같다.
불우 이웃과 소외계층을 위해서는 남 모르게 사랑을 위해서는 남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는 김한섭씨! 그는 도덕성을 회복하고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고 가진자가 베풀어야 한다." 고 말한뒤 "이웃을 위해서 우리 모두 열심히 뛰자."며 밝은 웃음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