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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재단

텔레비전 수리공에서 삼성종합프라자의 주인이 되기까지 조회 : 8,214      1997-04-01

"텔레비전 수리공에서 삼성종합프라자의 주인이 되기까지"

"남의 도움으로 성공했으면 남 도와주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세상에 어는 누구도 남의 도움 없이는 성공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공해서 자기 호주머니에 다 넣어가지고 있다면 그건 성공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남의 덕으로 사는 거라고 말하는 재단법인 삼일장학문화재단의 김한섭이사장(57세)은 남 도와주는 재미로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이렇게 순환되는 거라고 믿는 그는 7년전 거금 7억원을 출연,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얼마전 구미상공회의소에서 제 7회 삼일장학문화상 시상식을 가졌는데 42명의 중학교 진학 장학생에게는 각각 30만원의 장학금과 부상을 전달했으며 21명의 고등학생에게 각각 50만원과 부상을 21명의 대학교 진학 및 재학 장학생에게는 각각1백50만원의 장학금과 부상르 전달했다. 문화상은 대상 수상자에게 2백만원의 상금을 전달했으며 정신문화,봉사,체육진흥,문화진흥 등 10개 부문 장려상 수상자에게는 각각1백만원씩의 상금을 전달했다. 이밖에도 사물놀이 육성학교(형곡초등)에 3백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고 4백20만원을 들여 구미전문대학과 조마면사무소 등에 도서 혹은 컴퓨터 레이져프린터기를 전달했다.

구미에서 (주)삼일(전자종합유통회사)과 한국이동통신 구미중부대리점을 운영하며 대구지방법원김천지원 조정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김한섭 이사장은 재단 설립 목적을 `삼일 운동 정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어려운 가정에 있는 우수한 학생과 우리 생활주변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인물을 선발,시상하고 격려하여 국민정신 문화향상을 기여하는데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게 남 주기를 좋아하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김한섭 이사장은 이렇게 많은 금액을 장학금과 시상금으로 줄 수 있도록 92년에 5천만원을 재출연했으며
지난해 다시 1억원을 재출연 증자했다.

학교 다닐 때의 일이지만, 송설학원의 교주인 최송설당 할머니께서 전 재산을 희사해서 설립되었다는 걸 알고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 때는 제사 때 학생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떡을 먹으면서 나도 성공해서 저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마면 장암에서 태어난 김한섭 이사장은 이웃끼리 서로 주고 받는 것을 보면 자랐다고 하는데 현재 하는 장학사업이나 문화사업은 그때 서로 주고 받는 것의 연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이사장은 태어난지 3일만에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까지 중2때 돌아 가셨기 때문에 조부 밑에서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자전거로 김천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겨울철 강한 북풍이 몰아칠 때는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이 시렸고 자전거 앞바퀴가 들릴 정도였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뿐만 아니라 어릴 때 `조마갑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살았지만 어째어째 하다보니 거지가 되었단다. 그러나 김이사장이 전자사업을 하게 된 것은 기술하사관으로 미국에 가서 기술을 배운 덕분이었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레이다 정비 공부를 하기 위해 두 차례 미국에 갔었는데 이때 전자 분야의 기술을 배웠다. 같이 간 동료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돈을 벌었다. 이때만해도 미국에서 한 달 벌면 한국에서 일 년은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김이사장은 돈을 벌고 싶은 유혹을 받았지만 `돈은 있다가도 없을 때가 있다`는 생각때문에 전자기술을 배웠다. 미국에서는 공부를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돈이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9년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처음엔 텔레비젼 수리를 했어요. 고향에서 하려고 하니 부끄럽고 해서 구미에서 이 일을 했는데 여기에서 돈을 좀 벌었기 때문에 고향 김천 사람을 위해서 보다 여기 사람들을 위해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한섭 이사장은 장학금을 줄때 김천 학생들도 여럿씩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천사람들에게 미안해 한다. 돈이 김한섭 이사장보다 훨씬 더 많은 김천 사람중에서도 그런 일은 커녕 그런 생각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장학사업 하는 일은 절대로 보도하지 말아 달라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기자의 소질을 총 발휘하여 억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물사진을 찍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해 경북도지로부터 `자랑스런 도민상`을 받았지만 이것까지 자랑하지 않았다. 성공하기 전에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자존심이 상해서 자주 가지 못한 고향, 고생 끝에 자주 갈 형편이 되니 고향엔 가족도 아무도 없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몇갑절 더 사람답게 열심히 살아온 김한섭 이사장은 많은 부자 친구들이 거지가 되었지만 자기는 `밥은 먹고 살게 되었다`고 보살펴 준 주의의 모든 사람들께 고마워 한다. 그리고 속설과는 맞지 않지만 애비 없는 자식도, 아니 부모 없이 큰 사람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정이 많다고 믿고 있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서러움 속에 애국심을 배우고 비록 가까운 거리지만 객지에 나가 있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림움을, 애향심을 익힌 김한섭 이사장은 장학사업을 하기 전에 고아원을 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이 고아원을 하면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음식 먹으면 이사회가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고, 오해를 받을 수 있을것 같아 고아원 부지까지 물색해 놓고 그만 두었다. 그 뒤엔 양로원을 할 생각도 해 보앗지만 같은 이유때문 포기하고 장학사업과 문화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TV수리공에서 많은 사원을 둔 구미 삼성종합판매장의 주인이 되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할 형편에서 남을 도와줄 형편으로 발전, 실천하고 있는 삼일장한문화재단의 김한섭 이사장은 부인 김금순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종교인도 아니면서 종교인 이상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조마 감자처럼 구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